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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that Matters

스타벅스와 환경 운동 12월 18, 2008

밑에 신청: Management — Anthony Yoon @ 8: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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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를 재배해서 추수하고 이리저리 옮겨다가 잘 씻어서 볶은 다음 갈아서 전 세계 별 다방에서 판매하는 스타벅스. 커피의 주 원료인 원두 농사가 이상 기후변화 때문에 재배 환경이 나빠져 원가가 올라가기에 기후변화를 예방, 조절 하는 것이 생산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스타벅스는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스타벅스가 기후변화의 대책을 위한 강력한 지지자 라는 것이 크게 놀랄 일만은 아니군요.

목화를 재배해서 추수하고 이리저리 옮겨다가 잘 씻어서 붙인 다음 염색해서 전 세계 매장에서 판매하는 리바이스. 이들도 지구 온난화 등의 이상 기후변화에 의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Mindy S. Lubber의 게시물을 보면 여러 예시 들을 바탕으로 친환경 정책의 국가적 강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을 읽다가 문득 들은 생각 때문에 괜한 고민을 하게 되었네요.

지금 자의던 타의던, 브랜드 이미지 혹은 실직적인 매출의 향상 효과를 보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기업마다 환경단체 및 빈곤퇴치를 위해 인도주의를 펼치는 NGO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에서 얼마 정도 기부를 하고는 있습니다. 그 이해관계는 더 깊숙이 들어가서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되면 써볼 생각이긴 합니다만 일단 기본적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자발적인 지원과 기부는 비즈니스라는 측면상 CEO의, 기업의 가치관이 어떻든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이 비즈니스의 틈 세에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경변화를 막으려 앞장서는 상황처럼 인도주의 활동과 빈곤퇴치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만약, 스타벅스와 환경운동의 예처럼 기업과 제3세계 빈곤층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생긴다면 그때 이루어질 기업의 투자를 단순히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됐네요.

단순한 가정을 해보자면 현재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이 더 이상 싼 값이 아니게 된다면 그때는 더 싼 곳에 ‘공장을 돌릴만한’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할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인도주의적 배경이 아닌 기업의 효율성을 위한 이런 자원의 공급이 마냥 반겨야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인 거죠. 결국 또 세계화를 앞세운 제국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엔 다시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층에게 재분배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까 하는 고민의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네요.

 

세계의 빈곤, 누구 의 책임인가? – 제레미 시브룩(Jeremy Seabrook) 12월 18, 2008

밑에 신청: Books — Anthony Yoon @ 8: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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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디 제출해야 할 일이 있어서 책을 읽고 써놨던 글입니다. 이 뒤에 이어질 글 때문에 찾아서 올리게 됐네요. 급하게 읽고 쓰느라 내용이 시원찮아 도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T^T

‘세계의 빈곤, 누구 의 책임인가?’

‘누구 의 책임인가’, 라는 말은 곧 책임을 져야 할 원인을 제공한 중심적인 주체가 있고 그것에 대한 대응이 있다면 이 끝이 안 보이는 기나긴 빈곤이라는 이름의 사이클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책을 펼쳤다.

빈곤 이라는 단어는 발전된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다가오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세기의 가난은 희소한 자연 자원 때문에 생긴 결과였으나 우리 세기의 가난은 부자들이 나머지 세계에 일련의 우선순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p.18. 전세계가 물질적 기술적 발전을 하는 동시에 가난 빈곤도 함께 발전을 해왔다. 다만,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발전을 했을 뿐. 미국 영국 등 선진국 내에서도 자국의 발전 과정 안에 빈곤층은 항상 형성되어왔고 그들은 점차 동정이 아닌 쓰레기 취급을 받으면서 사회에서 소외되어갔다. 이것을 세계화의 지도에 펼쳐보면 각 국가들의 발전과 자유주의라는 때깔 좋은 허울 안에서 발전과 효율성 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빈곤은 가끔 메스 미디어를 통한 동정심 유발의 자극제가 될 뿐 사실상 일련의 우선순위에 따른 스스로가 자초한 패배자라는 인식일 뿐이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부의 창출 방식과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 ‘부자나라’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방법인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발전을 도모한다면 빈곤은 해결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너도 이렇게 하면 똑같이 성공할 것이다 라는 말은 5살짜리 아이도 안 속을 입에 발린 말로 느껴진다. ‘문제는 부가 성장할수록 빈곤도 자라난다는 점이다. 빈곤이 인간성의 발전을 가로막아 이를 감소시킨다는 위대한 진실은 더 심각한 거짓말을 숨기고 있다. 인간의 삶은 개인이 즐기는 부의 양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강화된다는 점이다. 빈곤의 반대는 부유함이 아니라 충족함이다. 빈민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생계를 꾸리기에 충분한 정도의 만족과 충족함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신 부를 좇고 있다. 이는 충족함에서 우회하고 만족을 더욱더 도달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p.74

사회주의가 관료제의 비효율성, 독재, 군사정권, 그리고 정치적 억압 등등 여러 요인들과 함께 사람들의 끝없는 욕구를 계산하지 못해 이상주의적인 사상이 되며 실패를 하였고 이 실패와 붕괴가 너무 급속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그 어떠한 검증도 받지 못한 체 해답이 되어왔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행위자의 끝없는 성장에 영원히 구속되어 결코 충분함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충족함 이라는 오래된 꿈은 사라져 버렸다.’ p.87. 이것은 자유주의가 뿌리부터 잘못된 것이며 모든 빈곤의 원인이고 무조건 바뀌어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과 점차 확산되어가는 소비주의라는 부의 활용적인 측면에 대해서 어떠한 검증도 없이 일괄적으로 통일되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로 세계화 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 열강들의 식민주의의 연장선으로 자국의 산업 농업을 보호하면서 빈곤 국가들의 경제학에 근거한 천연자원과 농업의 goods specializing을 통한 수출입의 강요를 하며 또 다른 금전적 식민주의를 펼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작가는 시스템의 기초 뿌리의 오류를 보았다. 원인과 현 시스템의 단점도 명백히 알고 있지만 이것을 뿌리부터 송두리 채 바꾸려는 것은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다만, 세계화 되어가는 초 국적 기업들과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것이 뻔히 보이는 선진국의 대변일 뿐인 IMF등의 국제 기구들의 횡포에 대한 제제가 필요하다. 이것은 결국 또 감정과 이론에 호소하는 방법으로서 시스템적인 변화와 실질적인 제제가 동반되지 않는 한 아무도 세계화의 거센 물살을 피해갈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안전한 생계유지와 충족감을 위한 빈곤 국가와 빈곤층의 ‘자립’을 돕는 참여자 NGO의 역할은 더욱 명백해지며 동시에 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동반한 세계화의 단점을 보강 하고 새로운 의미의 탈 식민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 모색에 온 힘을 다 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경제적인 측면과 기본 충족감이라는 측면에서 빈곤의 정의 내리기 힘듦과 해결 해야 할 한 부분에 집중하여 설명하였다. 이것은 큰 틀에서 체계적인 변화를 모색 해야 하고 우리들의 역할과 앞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제시해 주었다. 자립을 돕는 참여자가 변화의 실질적인 실행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권과 종교 문화 그리고 사회 관습 등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와 함께 고착되어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대응 방안의 개념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태어나 이 복잡하고 어려운 실타래 풀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걱정 반과 기쁨 반으로 다가오며 복잡함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