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의 일부를 올립니다.
‘The Life of David Gale’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인데 개인적으로 그 임팩트가 커서 항상 곱씹어 보고 이 말에 어떤 오류가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대목입니다.
“Fantasies have to be unrealistic because the moment, the second, that you get what you seek, ‘you dont, you cant want it anymore’.
In order to continue to exist, desire must have its objects perpetually absent.
It’s not the it that you want, it’s the fantasy of it.
So desire supports crazy fantasies
This is what pascal means when he says that we are only truly happy when daydreaming about future happiness or why we say the hunt is sweeter than the kill or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not because you will get it. because you are doomed not to want it once you do.
So the lesson of Lacan is living by your wants will never make you happy. What it means to be fully human is to strive to live by ideas and ideals and not to measure your life by what you’ve obtained in terms of your desires but the small moments of integrity, compassion, rationality, even self-sacrifice.
Because in the end, the only way that we can measure the significance of our own lives is by valuing the lives of others.”
이걸 해석해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의역 조금 포함)
“환상은 현실적이지 못해야만 한다. 당신이 바라고 찾고 있는 것을 얻게 되는 그 순간 당신은 그것을 더 이상 원하지도 원할 수도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욕망, 소망, 원하는 간절함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의 목표 달성은 없어야 한다. 당신은 그 목표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환상을 원한다. 그렇기에 욕망, 소망, 원하는 간절함은 말 도안되는 환상들을 지탱한다.
이것은 바로 파스칼이 말한 ‘우리는 오직 미래에 대한 행복을 몽상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한다‘ 던가 ‘사냥은 죽이는 것 보다 달콤하다‘ 던가 ‘네가 무엇을 소망하는지 조심해라, 그것을 갖게 됨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한번 가지게 되면 다시는 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를 뜻한다.
그래서 라칸의 교훈은 바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쫓는 삶은 당신을 절대 행복하게 해주지 않을 것이란 거다.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사상과 이상에 따라 살기 위해 싸우며 노력한다는 것과 당신의 삶을 측정 할 때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가 아닌 ‘정직, 동정, 배려, 합리, 자기 희생 마저’의 짧은 순간들을 측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에는 우리들 자신의 삶의 중요성을 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다른이들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 문장인 “Because in the end, the only way that we can measure the significance of our own lives is by valuing the lives of others.” 이부분은 제 해석에 확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을 보고 근 4-5년간 계속 고민을 하던 중 나중에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라는 책에서 욕구와 행복에 관한 수학 방정식을 보고 조금 억지는 있지만 연결이 어느정도 된다고 생각한게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뭔가를 소유하고 할 수 있는건 유한한데 원하는건 무한합니다 유한대인 ‘충족시킨 욕구의 양’을 무한대인 ‘충족시키려는 욕구의 양’으로 나눠봤자 그 값은 0 이라는거죠. 유시민씨는 분모가 무한대인데 뭔가를 소유하고 소비할 때마다 느낀 행복은 ‘심리적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어선 양의 동서와 시의 고금과 그 종교의 이름을 불문하고 사람에게 욕구를 제한하라고 가르치는 성직자를 경제학자는 능가할 수 없다고도 표현하네요. 탐욕을 버려라. 이곳 저곳에서 수 천, 수 만번 들어오지만 어렸을땐 왜 꼭 그렇게 설득하려 하는지 이해를 못했었습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정도 걸쳐놓고 이해하려 애를 쓰고는 있네요.
하지만 이런 개인의 욕구 절제와 이어지는 행복을 가정했을때 그것이 어떻게 내 삶의 가치와 다른 사람의 가치로 연결 되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라는 책에서 Robert Putnam의 Social Capital(사회적 자본)에 관한 내용을 짧게나마 다루는 부분에서 이번에도 확실하진 않지만 희미한 연결고리를 발견 하게 됐죠.
“첫 번째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공이 상당 부분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이 사회적 자본은 커뮤니티가 제 기능을 발휘할 때 갖게 되는 정체 모를, 그러나 매우 중요한 특징들을 말한다. 여러분이 아플 때 이웃이 대신 개를 산책시켜 준다든지, 계산대 점원이 여러분을 믿고 외상으로 물건을 내줄 때가 바로 사회적 자본이 가동되고 있는 경우다. The shadow of the future(미래의 그림자)가 사회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갖고 있는 그룹 (즉 협력하는 습관이 더 강한 그룹)에 속한 개인은 사회적 자본이 적은 그룹의 개인에 비해 건강과 행복에서부터 잠재 수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준에서 더 넉넉한 삶을 산다. 뿐만 아니다. 범죄율에서부터 사업비용, 경제 성장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준에서 전반적으로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미래의 그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여러분이 오늘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내일은 그쪽에서 여러분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다. 이것이 직접호혜주의 direct reciprocity의 대전제 이다. 간접호혜주의 indirect reciprocity는 그보다 훨씬 앞서 나간다. 여러분이 오늘 여러분 커뮤니티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내일은 그 사람은 아니더라도 여러분 커뮤니티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렇게 미래의 그림자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규범과 행동, 즉 그룹 내 혹은 그룹간 협력을 촉진하는 규범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다.”
남의 가치를 높이고 쉽게 말해 남을 돕는 행위가 어떻게 나의 부(wealth)와 가치(Value)로 환산 되는지 Robert Putnam이 수치로 증명 해 보인거죠.
솔직히 아직도 이 모든 연결과 개념들이 제 머리에선 흐리멍텅합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며 어린 나이때 가치관과 방향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네요.
욕구와 행복. 역시 아직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제 욕구는 무한대라서요.